여행 이야기

대청도 4ㅡ농여해변 풀등, 선진포 선착장 어부상

남보라 2015. 5. 10. 14:00

 

 

 

 

 

 

 

 

 

 

 

 

 

♡농여해변 풀등

ㅡ바위가 농짝같다 해서 붙여진 농여라는 말처럼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해변, 썰물이 되면 농여해변과 미아동해변이 하나로 연결된다. 농여에서 양지동으로 이어지는 해변에는 썰물 때는 가도가도 끝이 없는 '풀등' 이 드러난다. 섬 주민들은 모래를 '풀' 이라고 부르는데 풀등은 바다에 있는 모래 언덕을 의미한다.

 

ㅡ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풀등을 인천에선 대이작도와 장봉도에서도 볼 수 있는데 대청도의 풀등은 물이 빠지면서 육지와 맞닿아 드넓은 모래해변의 장관을 연출한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DMZ 부근의 10경 중 하나~

 

ㅡ모래가 파랑을 만나 연흔을 만들고 바람에 날린 모래는 층리를 형성하였다. 연흔과 층리는 긴 세월동안 조개들과 함께 바위가 되었다. 대청도는 인문지리, 역사문화 뿐 아니라 자연생태의 보고인 것이다.

 

♡선진포 선착장 어부상

ㅡ대청도가 암도라고 불리울 시, 조선 명종때 문정황후 윤씨의 병이 '상기향' 이라는 약을 이곳에서 구해 완쾌되었다. 그때부터 나라에서 암도라는 지명을 '수목이 무성한 큰 섬' 이라는 의미로 대청도라 이름지었다 한다.

 

ㅡ이 섬은 주민들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어촌지역으로 다양한 어종 수산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섬 전체가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은 관광휴양객들이 속세를 잊고 피로 풀기에 적격이다. 이곳은 우리가 영원히 간직할 하늘이 내린 낙원이다. 거리만 가까우며 또 가고 싶은 곳, 아름답다!

 

ㅡ선진포 선착장 주변에 어부상 있다. 어부상 아래 대청도에 대한 소개글 있는데 아래와 같다.

 

ㅡ소개글: 대청도는 예부터 유배지로 이름난 곳이다. 고려 충렬왕때 중국 원나라 태자 신황이가 계모의 모함으로 태자의 근친 일백여 호를 데리고 대청도에 도착하여 정착하고 대궐을 짓고 생활하였다 하여 이곳을 태자의 도읍지라 하고 대궐 앞에 우뚝 솟은 산을 삼각산이라 칭하였다 한다.

 

ㅡ이중환의 '택리지' 에는 유배 당시 세웠던 궁실의 섬돌과 주춧돌 자리가 조선 후기까지 남아 있었고 그 일행이 심었던 뽕나무와 옻나무가 숲을 이룬다고 기록되었다. 현 대청초등학교 인근이 원순제가 살았던 곳이라고 주민들은 믿고 있다.

 

ㅡ여기 대청도는 농경지가 척박하여 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며 살아가는데 이 어부상은 풍요한 삶을 위해 화합, 단결하여 힘차게 노력하는 섬 주민들의 염원을 표상하였다.

 

ㅡ대청도는 현재 참홍어 최고 산지이며 고래가 많이 잡히는 서해 어업의 전초기지였다. 1918년 일본의 동양포경주식회사가 이곳에 진출하기도 할 정도로 우리 나라 포경의 핵심기지였다. 우리 나라에서 두번 째로 세워진 소청 등대는 바로 대청 어부들의 밤을 밝히기 위한 곳이었다.